2020. 6. 5. 08:59ㆍ해외여행
희망봉 Cape of Good Hope
중세 대항해시대의 역사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법한 그 이름이다.
아프리카의 끝이고, 인도로 가기 위한 항로였던 이곳에 드디어 왔다.
과연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 얼마나 다를지, 그리고 그 옛날 항해사들은 이곳에서
어떤 일을 겪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희망봉은 예전 중세 탐험가들이 이 암석이 보이면 곧 꿈에도 그리던 인도 대륙으로 갈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런 사연 덕분에 실제로 아프리카의 최남단인
아굴라스(Cape L'Agulhas; 포르투갈어로 바늘이란 의미)곶 보다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중세 시대의 탐험가들이나 선원들은 희망봉이 아프리카 최남단이라 믿었지만 실제로는 희망봉에서
남쪽으로 200km 떨어진,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아굴라스곶이 최남단이다.
아굴라스곶은 암초가 많아 항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케이프 반도는 항해자들에게
안전한 피난처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최남단인 아굴라스곶보다는 케이프 반도가 더욱 유명해진 것이다.
희망봉 전망대 앞 작은 광장에는 뉴욕과 파리 베를린 그리고 시드니까지의 거리가 표시되어있다.
이 작은 광장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희망봉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곳이 바로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곳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약간 다른 두 종류의 물 색이 만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희망봉은 유럽과 아프리카의 만남, 그리고 유럽과 인도의 교류의 증거이다.
희망봉은 1488년 포르투갈의 항해자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당시 이 주변 해역이 매우 거칠었기에 '폭풍의 곶(Cape of Storms)'으로 불렸다.
1497년에는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지나 인도로 가는 동방항로를 개척하는 데 성공한다.
금과 향료를 찾기 위한 포르투갈의 오랜 꿈이 실현된 것이다.
희망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서양과 인도양의 바다를 촬영해 보았다.
희망봉이란 이름은 동방 항로의 개척이라는 오랜 꿈을 실현한 포르투갈의 왕, 주앙 2세가
‘희망의 곶’이라고 말하면서 바뀌게 된 것이다. 아마도 주앙 2세가 ‘희망의 곶’이라고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은
동방 항로를 개척한 기쁨의 의미도 담겨 있었겠지만 선원들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폭풍의 곶'이라는
이름보다는 희망과 용기를 주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여행자들에게 희망봉이 의미를 갖는 것은 단순히 지리적 위치 때문이 아니라,
그곳이 품고 있는 인간의 오랜 역사와 꿈과 희망 때문일 것이다.
사실 세계지도를 보면 그렇게 명명한 당시 항해사들의 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유럽에서 출발해 장장 1만 km에 달하는 지겹디 지겨운 아프리카 서해안을 지나,
대륙이 끝나고 처음으로 동쪽으로 도는 곳이 희망봉이기 때문이다.
케이프 포인트를 보고 내려와서 자유시간으로 점심식사 시간이 주어진다.
케이프 포인트 안내센터 중앙에는 자랑스러운 태극기가 걸려있었다.
안내센터 옆으로 자그마한 식당이 있는데 이곳밖에 음식을 판매하고 있는 곳이 없어서
다들 이곳에서 사먹었는데, 나는 피자와 샐러드를 점심으로 사먹었다.
관광지 답게 물가는 꽤 비쌌지만 맛있게 먹었다.
점심을 먹고 희망봉 Cape of good hope 바로 앞바다 까지 이동하는데,
밥먹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해가 쨍하고 나며 날씨가 맑아졌다.
남반구의 날씨 변덕은 참 빠르고 심한것 같다.
대항해시대 이후인 1652년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케이프타운 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식민화하였다.
나폴레옹 전쟁 중이던 1806년에 영국이 점거하였으며, 1814년에 네덜란드와의 협정으로 영국령이 되었다.
근대에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어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짧은 항로가 생기자 대부분 시장을 잃었고,
현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더 유명해졌다.
2019년 에는 수에즈 운하의 통행세가 대폭 인상되고, 근처의 해적들 문제도 있고 해서
1600년대처럼 희망봉을 돌아서 유럽으로 가는 배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희망봉이라는말은 또한 1652년 개설된 네덜란드 식민지 케이프콜로니(Cape Colony)를 가리키기도 했으며,
1910년 남아프리카 연방(the Union of South Africa)이 결성되기 직전에는
케이프 주(Cape Province) 지역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1일 투어를 무사히 마치고 시내로 돌아와 대형마트인 픽앤페이 Pick n Pay로 기념품을 사러 갔다.
스위스 초콜릿을 무척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어서, 회사 동료들과 친구들 선물을 살 겸 다녀왔다.
다녀오는길에 배가 고파서 커피와 파스타로 허기를 달래주었다.
내일은 기대하던 사파리 투어를 떠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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