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12. 08:59ㆍ국내여행
어제 포스팅했던 남양주 8경 다산생태공원 포스팅의 연결편 포스팅으로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기념관 및 무덤 그리고 실학박물관에 대한 포스팅을 이러 하고자 합니다.
다산 정약용은 모두가 알다시피 거중기를 개발하고 사대주의와 유교사상이 뿌리깊던 조선시대에
실용적인 학문인 실학을 추구했던 깨어있는 학자였습니다.
그런 위대한 학자의 묘와 기념관을 가본다는 것이 궁금하고 설레였어요!
정약용선생은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당시의 광주군 초부면 마현)에서 아버지 나주 정씨 재원과 어머니 해남 윤씨
사이의 막내아들로 태어나셨다고 합니다. 이곳 마현(마재)마을은 선생이 태어나시고 묻히신 곳으로,
위로 이복 맏형인 약현과 동복형인 약전, 약종 그리고 누이가 계셨다고 해요
서울에서의 관직생활 (1783~1800)과 전라남도 강진에서의 유배생활(1801~1818)을 제외 하고는
주로 이곳에서 생활 하셨다고 해요. 선생은 반계 유형원, 성호 이 익 선생의 뒤를 이어 조선 시대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분으로 조선후기 개화기사상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고 문도공이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선생은 1표 2서[경세유포, 목민심서, 흠흠신서]로 대표되는 500여권의 경집과
문집을 저술하셨을 뿐만 아니라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수원의 화성을 설계하셨고 거중기 등의
과학기구를 제작하셨으며 마과회통 등의 의학서적도 남기셨다고 하네요
선생의 학문적 관심은 오로지 [수기안인] 즉 어떻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아 백성들의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 에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국립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로비에는 선생의 초상화가 걸려져 있는데
[한국 최대의 사회 과학자] 라고 적혀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500여권의 저작물은 주로 강진 유배기에 이루어졌다고 해요.
이렇게 방대한 저술 결과는 유배지에서 만난 제자들의 조력이 있어 가능했는데요!
유배지에서 키운 제자들이 스승과 함께 연구와 저술을 도왔으며, 분업적으로 저술을 도와 함께한 것이어서
집체 저술의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서 키운 제자들은 친척이거나 양반 자제도 있지만, 읍중 아전집의 자제들과
승려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에서 사제 관계의 전통으로 보아 매우 특이한데요!
이들은 절망과 고난의 시기에 다산 정약용과 사제의 연을 맺고 함께 역경을 딛고 희망을 써 나갔다 합니다.
다산초당은 절망을 디디고 다산의 희망주의가 피어낸 새로운 세계였던 셈이네요!
실학박물관은 요즘 많은 박물관이 그렇듯이 코로나19 감염병 심각 격상으로 휴관중이었네요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정신이 깃든 실제로 소용되는 참된 학문인 실학에대해 보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그렇지만 호수가 산책도 하고 선조의 지혜를 엿보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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