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여행기 5일차(1편) - 모세의 느보산, 요르단의 로마 제라쉬

2020. 7. 3. 08:57해외여행

 

요르단에서의 시간은 참 빠르게도 지나가고 벌써 여행의 5일차이다. 

 

오늘의 여행코스는 모세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느보산과 로마의 위성도시 제라쉬 

 

그리고 북쪽의 3나라가 국경을 맞댄 이르비드 지역까지 이날도 알차게 다녔다.

 

우선 암만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느보산을 먼저 방문하였다.

 

요르단 평야
드 넓은 광야
느보산 기념비
요르단 광야
드 넓은 광야
멀리 건너편에 이스라엘 방향
느보산 모세기념비

 

 

그 옛날 출애굽하여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40년간 만나를 먹으며 생활한 곳이

 

바로 현재의 이곳 요르단 땅이다. 멀리 땅을 보니 왜 광야라고 불리웠는지 알 수 있었다.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척박하고 황량한 땅에서 그 많은 백성들이 농사나 수렵으로 

 

생존하기에는 매우 어려웠을것으로 보이고 가나안 땅이 상대적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지 않았나싶다.

 

 

이날 비가 조금 내렸고, 관광지 입구에는 큰 돌로 느보산 기념비와 모세 기념비가 서 있었다.

 

그리고 성경의 유명한 일화인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벌하였을 때,

 

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모세에게 회개하며 재앙을 멈출것을 부탁하여,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놋뱀을 걸어서 세워두고 그걸 본 사람은 나으리라고 하셨는데, 

 

그 이야기의 놋뱀이 기념으로 세워져있다. 

 

모세의 놋뱀
모세스 스프링
황량한 길
요르단 광야
지나가다 만난 양들과 개들
산양이 신기한듯 쳐다본다
양치는 개들

 

 

요르단에서 가장 손꼽히는 성지 느보산은 모세가 120세의 나이로 최후를 맞은 곳이다.

 

기독교와 유대교 모두에서 중요한 성지인 탓에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고 한다.

 

40년간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약속된 땅을 찾아 길을 나섰던 모세는 가나안이 바라보이는

 

이곳에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끝내 생사를 달리했다.

 

 

느보산은 3개의 중요한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으로 가장 높은 곳은 해발 835m이다.

 

아랍인들은 사야가(Sayagha)라고 부르는데 수도원이라는 뜻으로 느보산을 이루는 봉우리 중의 하나의 이름이다.

 

느보산에서 성당이 최초로 세워진 것은 597년이며 건설 당시 교회당 바닥에 모자이크를 장식했다.

 

그 후 비잔틴 시대를 거치면서 주요한 성지 순례지가 되었으며 1546년 폐허가 되었다.

 

1933년에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느보산을 조사, 발굴하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느보산이 국제 언론에 집중 부각된 것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한 2000년이다.

 

제라쉬 유적지 입구
제라쉬 유적 입구 대전차 경기장
대전차 경기장 흔적
대전차 경기장
중앙 광장
흔적만 남은 중앙 광장

 

 

요르단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로 페트라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고대 도시 제라쉬는

 

6,500여 년 전부터 인간이 지속적으로 거주해온 곳이다.

제라쉬는 숲이 우거진 구릉지대와 비옥한 유역으로 둘러 쌓인 평원지역에 위치한다. 제라쉬는 BC 63년에

 

폼페이 장군의 정복으로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데가볼리 연합의 위대한 10개 로마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로마의 지배 하에 이 도시의 황금기가 도래하였는데, 당시 이 곳의 명칭은 거라사였다.

 

현재 제라쉬는 일반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로마의 속주 도시 중 하나로 인정된다.

 

지난 70년간의 발굴과 복원 작업을 통하여 수백 년간 모래 속에 감추어져 있던 모습을 드러낸 제라쉬는

 

중동 지역 곳곳에서 발견되는 웅장한 공식 로마 속주 도시의 좋은 사례로서, 열주가 늘어선 포장 도로,

 

위풍당당한 산정의 사원, 멋진 극장, 넓은 공공 광장, 목욕탕, 분수, 그리고 탑과 문이 설치된 성곽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라쉬 유적지에서
흔적만 남은 건물들

제라쉬 풍경영상

제라쉬 원형극장
제라쉬 고대원형극장
제라쉬 고대원형극장과 유적지
제라쉬 고대 유적지

 

 

제라쉬는 로마제국의 동방거점으로 3세기까지 전성기를 누리며 번성하다가

 

이후 비잔틴제국과 페르시아 아랍에 정복당한다.

 

8세기 중반에 있었던 지진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석조 건물들이 무너졌고 번성했던 제라쉬 지역은 쇠퇴하게된다.

 

지진으로 함몰되어 잊혀졌다가 1806년부터 이 지역을 발굴하기 시작하여 지금도 꾸준히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제라쉬 유적은 로마 유적들 가운데 매우 여성적으로 세워진 도시로 알려져 있다.

 

언제든지 제라쉬 방문은 기억에 남을 여행이지만 특히, 꽃들이 만개하여 고대 유적들과 어우러지는 봄이 제격이다.

 

제라쉬 유적을 모두 둘러보는데 도보로 약 1시간 반에서 두 시간이 소요된다.

 

아직 제라쉬 유적은 절반도 발굴되지 않았고 지금도 계속 발굴중이라니 매우 신기했다.

 

고대 로마도시 제라쉬
이곳에서 있는 양들
유적지의 양들
터만 남은 로마의 흔적

아름다운 제라쉬 풍경

옛 성터

 

 

지진만 아니었으면 정말 고고학적으로도 가치있는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을 갖고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유적지 내에 양들이 들어와 풀을 뜯고 똥을 싸며 생활하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했고,

 

관광객들과도 어울리며 살아가는 모습이 참 신기하게 다가왔다. 

 

 

암만에서 제라쉬를 갈 때,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따바르부르나 요르단대학교 앞에서 버스(비용 1JD)를

 

이용할 수 있다. 택시나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입장료는 일반 성인 8JD (거주증이 있는 경우 0.5JD)이며, 개방시간은 하계 07:30 ~ 20:30 , 동계 07:30 ~ 19:00

 

가이드비용은 투어길이와 인원에 따라 다르지만 약 5JD ~ 10JD이고 매표소에서 신청가능하다고 한다.

 

제라쉬 유적지
제라쉬 고대 원형극장
고대 로마의흔적
드라이버 친구와 점프샷
고대 로마 유적지 제라쉬를 둘러보며
투어 같이한 요르단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많은 광광객들이 찾는 유적지
제라쉬 성문
이제 이르비드 지역으로

 

 

모세의 느보산과 고대 로마위성도시 제라쉬를 관광하고 북쪽으로 향한다.

 

요르단 여행의 마지막이 다가올 수록 아쉬움도 커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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