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최초 나치 수용소 다하우 수용소 Dachau Concentration Camp

2021. 3. 11. 08:53해외여행

안녕하세요 찐여행자입니다.

 

20세기 근대역사에서 세계 1차대전과 2차대전은 빼놓을 수 없을 만큼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행했던 독일은 분명 이 전쟁의 전범국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나치의 만행이 남아있는 나치 수용소도 잘 보존하고 관람객을 받는 게 아닐까 합니다.

 

같은 전범국인 어느 나라와는 180도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다하우 수용소 가는 대중교통
뮌헨 지하철 노선도
다하우 강제 수용소
잔혹했던 사건이 있던 현장의 문으로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끔찍했던 그때의 사진들

 

 

뮌헨의 지하철은 S-bahn 과 U-bahn 이 두 라인이 있었습니다.

 

고2때 제2외국어를 독일어를 배웠기에 지하철은 여성명사라서 die U-bahn 으로 불리는 게 기억이 나서

 

역시 배운것은 헛되지 않구나 라는 생각에 흐뭇했던 기억이 납니다. 

 

독일 지하철은 한국의 지하철과 크게 다른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표를 넣거나 카드를 찍고 들어가는 칸이 따로 없이 그냥 자유롭게 플랫폼까지 가서 지하철을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뮌헨 시민들은 대부분 장기 이용권인 1년짜리를 구매하여 소지하는데

 

가끔 저와 같은 여행자들이 푼돈을 아껴보려다가 사복을 입은 검문원에게 적발당하여

 

30배의 벌금을 내고 나라 망신까지 시키는 일이 종종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체코 프라하의 트램에서 무단승차로 적발되는 한국인들을 보았는데 참 안타까웠습니다.

 

다하우 수용소 내부
참혹 했던 그때 당시의 기록
나치의 만행
시체더미
나치에 의해 죽어간 유대인들

 

 

다하우 집단 수용소는 나치에 의해 1933년 3월 뮌헨 북서부에서 약 10마일 떨어진 설립되었습니다.

 

다하우 집단 수용소의 초기 죄수들은 독일 공산주의자, 사회 민주주의자, 노동 조합원, 여호와의 증인,

 

로마니(집시), 동성애자 및 재범의 가능성이 있는 범죄자들이었다고 합니다. 다하우에 수감된 유태인 수감자들의수는

 

수정의 밤(1938년, 11월10-11일) 이후 증가하였는데, 이 때 만 명 이상의 유태인이 다하우에 감금되었습니다.

 

 

1933-1945년 사이에 다하우에 수감된 죄수의 수는 188,0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1940년 1월과 1945년 5월 사이에 수용소와 보조 수용소에서 사망한 죄수의 수는 최소28,000명이었는데,

 

1933년과 1939년 말 사이에 그 곳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수는 합산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다하우에서 사망한

 

총 희생자의 수가 몇 명에 이를지는 밝혀지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다하우 수용소는 SS 수용소 감시대의

 

교육 기관이었으며, 이 수용소의 조직과 일과가 전 나치 수용소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감옥처럼 높은 담벼락
쓸쓸한 수용소의 모습
차디찬 아픈 기억의 현장
관람하다가 생각에 잠긴 관광객들
감시탑
날씨는 좋았던 관람일 당일
넓게 퍼진 수용시설
수용 시설 내부
그 당시의 기록
화장실
엄청나게 좁은 목조 침대
끔찍했을 기억들

 

 

다하우 강제 수용소에서, 독일 의사들은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감압실을 이용한 고지대 실험,

 

말라리아와 결핵 실험, 저체온증 실험 및 신약 검사 실험을 포함한 의학적 실험을 실행하였습니다.

 

이 실험의 결과로 수백의 죄수들이 죽거나 영구적으로 장애를 입었고, 수감자들은 또한 수용소 운영,

 

건설 공사 및 소규모 수공예 산업에서 강제 노동력으로 이용당했습니다.

 

 

다하우에는 30여 개가 넘는 보조 수용소가 있었는데, 30,000명이 넘는 수감자들이 그 곳에서 독일 군대를 위한

 

군수 물자를 생산했다고 합니다. 수천 명의 수감자들이 일을 하다 죽어 갔으며, 1945년, 동부에서 철수한

 

수용소로부터 지속적으로 많은 수감자들이 유입되었으며, 장티푸스 전염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1945년 4월 29일, 미군이 다하우를 해방시켰는데 미군이 다하우 수용소로 진격해 왔을때,

 

시체로 가득 채워진 철도열차 30여대가 발견됬다고 하니 참 끔찍합니다.

 

아픈 기억이 남아있는 장소
야속하게 좋은 날씨
교회 자리인듯 하다
얼굴에 빛이 나는 성인이 그려진 건물
옛 막사 터
화장시설
아름다운 정원
쓸쓸해 보이는 막사 터
투어 끝내고 귀가하는 사람들

 

 

인정하고 반성하고 사과한다고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본적인 것 조차 하지 않는 

 

민족도 있기에 독일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이성적이고 올바른 가치관을 지닌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동선이 어긋나고 거리가 멀기에 대부분 유럽 여행기에 포함시키지 않는 폴란드의 크라코프.

 

아우슈비츠를 보기위해 저는 그곳을 직접 다녀왔는데 체코 프라하 여행기 이후에 

 

다다음주 쯤에 폴란드 여행기에서 유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 관람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요새 미얀마의 상황을 보면 참 안타까운데, 이런 가슴아픈 역사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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